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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다는 이유로 7개월 고생했습니다 🥹

그래도 배운 게 있다면, AI는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는 것?

포텐셜리 뉴스레터 Vol. 30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저의 가장 친한(?) 지인이 최근에 이직에 성공했어요. 작년 10월에 인터뷰를 시작했고, 올해 5월에 최종적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니 무려 7-8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이 이제는 20년 이상의 경력자들이 많기에 이직보다는 창업으로 진로를 결정하지만, 저의 지인은 타고난 직장인(!)이거든요. 그에게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는 DNA는 없습니다. 그는 타고난 성격상 위험을 두려워하고,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일을 찾아 하는 것보다 주어진 일 안에서 최상의 성과를 만드는 것이 그의 장점이기도 하지요.

가장 친한 지인이라는 이유로, 저는 이 7개월의 이직 과정에 아주 깊게 관여했습니다. 치앙마이에서 갑자기 화상 인터뷰가 잡혔을 때, 택시를 타고 치앙마이에 있는 유일한 백화점(?)으로 가서 곤색 넥타이를 공수해 드리기도 하고, 인터뷰에서 어떻게 자신의 강점을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지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기도 했지요.

약속된 인터뷰만 총 9회가 넘어가니 나중에는 멘탈 관리까지 도와드려야 하더군요! 정신을 잃지 않도록 인터뷰 전에 초코바도 하나 준비해드리고, 인터뷰가 끝나고 뭔가 아쉬워 자책을 할 때면 궁둥이 팡팡도 해드려야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가까운 지인이라는 이유로 저도 7개월 동안 고생을 많이 했네요. 🫠

인터뷰의 끝이 다가올수록 지인은 당연하다는 듯, '당신이 내 연봉협상을 맡아줄 거지?'라며 대범하고 뻔뻔한 요구까지 하더군요. 하아, 친하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일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마무리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왜? 저는 한국인이고, 일잘러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연봉협상 코칭을 오래 했고, 말의 공식 이라는 협상, 커뮤니케이션 책까지 썼으니 이론적으로는 저는 '준비된 협상 조력가'여야만 했는데, 자꾸 이상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인이 절친이라는 이유 때문에 협상에 대한 객관화가 안 되더라고요. 🥲 모든 협상은 준비와 BATNA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 움츠러들었습니다. 6개월이 넘어가는 긴 시간이 우리 모두를 지치게 했고, 동시에 지인이 너무나도 이직을 간절히 원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협상을 하다가 오퍼가 철회되면 어떡하냐고 오히려 저를 몰아붙이기도 했고요. (맞아요, 그는 덩치에 비해 완전히 새가슴을 가지고 있…) 외부협상보다 내부협상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9개의 인터뷰가 끝나고, 그 회사는 지인을 뽑고 싶다는 이야기를 구두로 넌지시 이야기했습니다. 뽑고는 싶은데, 연봉이 맞아야 할 것 같다는 그 중의적 표현 앞에서 그는 최대한 빨리 적당히 낮은 숫자를 부르기를 원했고, 저는 그 숫자에는 동의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머뭇거리기만 하는 지인에게, AI 데이터를 보여주기로 합니다. 나보다 더 똑똑한(?) AI의 데이터로 설득을 해보기로요.

5개의 AI를 불러보기로 합니다. 제미나이, 클로드, 그록, 챗GPT, 딥시크 — 컴퓨터에 5개의 창을 띄워놓고 현재의 고민과 맥락을 학습시킨 뒤에 조언을 구했습니다. 같은 질문을 5개의 다른 AI에게 했더니, 답이 신기하게 나옵니다.

3개의 AI는 적당하게 낮은 숫자를 부르고 빨리 협상하는 게 좋겠다고 하고, 2개의 AI는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숫자를 조금 세게 던져보라고 하더군요. 큰 줄기는 '빨리 타협해라'와 '조금 시간을 끌어봐라'로 나뉘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또 조건들을 다르게 주기 시작합니다.

스톡옵션을 더 달라고 조언하는 AI, 지금 그 포지션에서는 이직 자체가 어려우니 아무 말 하지 말고 빨리 사인하라는 AI, 내년에 다시 협상해보라는 AI,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AI,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더 세게 숫자를 불러 회사를 화들짝 놀라게 하라는 AI…

5개의 각각 다른 답을 앞에 두고 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5명의 멘토를 만나 최선의 결정을 하겠노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5명의 조언이 다 달라 더 혼란에 빠진 느낌이었죠. 친구들이 가끔 협상 조언을 물어보면 '이제 AI가 나보다 더 조언을 잘 해줄걸? 제미나이나 클로드에게 물어봐!'라고 해준 조언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알게 되었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저는 결국 책상 서랍을 열었습니다. 연봉협상 코칭 과정에서 제가 써놓은 메모들을 다시 꺼내 살펴보고, 그 옆에 저의 책 말의 공식도 함께 펼쳐놓았어요.

협상의 본질은 결국 두 가지입니다. 위협과 소망.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AI는 이 질문에 데이터로 답했지만, 저는 이 질문에 사람으로 답해야 했습니다.

그 회사가 7개월 넘게 9번의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가 뭘까요? 그들도 지쳐 있었고, 그들도 이 자리를 채우고 싶었습니다. 소망은 양쪽 모두에게 있었어요. 저는 그 지점에서 출발해 적당한 밀당을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지인도 회사도 만족하는 딜을 만들어냈습니다. 합격 후 연봉협상만 한 달이 걸렸는데,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사인 받은 그 딜은 흥미롭게도 AI가 제안한 5개의 시나리오 어디에도 없었어요.

이 경험이 저에게 남긴 것은 이겁니다. AI는 틀리지 않았어요. 다만, AI는 이 사람을 몰랐습니다. 7개월을 옆에서 지켜본 저만이 알고 있는 것들 — 그가 어떤 순간에 무너지는지, 어디서 용기를 내는지, 진짜 원하는 게 연봉인지 아니면 인정인지 — 협상을 위한 프롬프트에 한 사람의 모든 인간적 욕구를 담아내기란 어렵고, 그러므로 AI의 답변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다시 배웠어요.

그렇게 AI를 5개 펼쳐놓고 답을 구하다가, 결국 제가 쓴 책과 노트를 다시 펼쳤습니다. 이 상황이 조금 웃기기도 하고, 조금 안도되기도 했어요. AI가 나의 일을 충분히 대체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새롭게 배웠습니다. 제각각 답이 다른 5개의 AI를 비교해보면서, 최종 결정은 AI가 아니라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배웠어요. AI가 판단을 할 수는 있어도, 책임을 져주지는 않으니까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취할지는,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나저나 지인이 저에게 최종 인상된 연봉의 20%를 수수료로 주기로 했는데, 과연 저는 그 금액을 받을 수 있을까요? 7개월 동안 같이 고생한 땀과 눈물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꼭 받아야 하는데 말이죠. 이 수수료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AI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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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텐셜리,

쟈스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