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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에 가고 싶은 걸까, 그 회사에 다니는 ‘나’가 부러운 걸까?

부러움과 진심을 구분하는 세 가지 질문 🧭

포텐셜리 뉴스레터 Vol. 37

안녕하세요 여러분!

한국은 정말 무더워졌다고 하는데, 즐거운 한 주 시작하고 계신가요? 😀

지난주 한 후배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탑티어 회사로 이직을 꿈꾸는 그녀는 미래의 그림과 포부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러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게 진짜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제 마음일까요. 아니면 제가 정말 그 일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걸 가진 사람이 부럽고, 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원하게 되는 마음일까요.”

너무 좋은 질문이었는데, 시간상 짧게 대화를 마무리해야 해서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더 풀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후배님도 이 뉴스레터의 구독자이니 부디 이 글이 그녀에게 잘 닿았으면 좋겠네요. ❤️

부러움과 진심, 왜 우리는 헷갈릴까?

커리어의 큰 갈림길 앞에서 우리는 종종 두 가지 다른 마음을 똑같은 설렘으로 착각합니다.

진짜 하고 싶어서 끌리는 마음과, 그걸 가진 사람이 부러워서 끌리는 마음.

이 둘은 몸 안에서 거의 똑같은 흥분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머리로는 좀처럼 구분되지 않아요. 그리고 이 구분을 놓친 채로 이직, 진학, 심지어 결혼까지! 인생의 큰 결정 중 상당수가 내려집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문장들을 학습해왔죠.

‘남들이 다 알아주는 간판 좋은 대학에, 회사에 가야지.’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살아야지.’
‘마흔 전에는 결혼을 해야지, 애도 낳아야지.’

누가 언제 정했는지도 모르는 이 문장들을, 우리는 어느새 나의 기준인 것처럼 품고 삽니다.

그리고 이 문장들을 먼저 통과한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부러움이 켜집니다. 문제는 그 부러움이 정말 내가 원해서 생긴 건지, 아니면 그저 남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먼저 통과한 사람을 보고 있어서인지, 확인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이죠.

그 결과 타인이 만든 채점표로 내 인생을 채점하며 몇 년을 살고, 그 채점표를 다 통과하고 나서야 “근데 나는 이걸 왜 원했지?”라는 질문을 뒤늦게 만나게 됩니다.

이런 관성에 젖지 않으려고(?) 저는 8살 난 딸에게 가끔 이렇게 이야기해요.

꼭 대학을 갈 필요가 없고, 꼭 대도시에서 살아야 할 필요가 없고, 꼭 결혼을 해야 할 필요도 없고, 꼭 아이를 낳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요.

남들이 이런 것을 다 한다고 해도, 그게 너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요소가 아닐지 모르니, ‘네가 진짜 원한다면’ 해보면 된다고요. 하지만 ‘남들이 원하니까 너도 그 욕망을 무분별하게 학습’ 할 필요는 없다고요.

잠깐, 그러면 저는 이런 타인의 욕망을 좇아가 보는 실수를 안 했을까요?

아이고, 아니죠. 저라고 왜 실수를 안 했겠어요?! 😂

사실 저도… 🙂‍↔️

저도 2019년 아이가 두살도 되기 전에, 딜로이트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죠. 인터뷰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5차 인터뷰까지 다 통과하여 그렇게 어렵게 들어가놓고, 3개월 프로베이션 마지막 날 제 발로 그만뒀습니다. 😞 (3개월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며 살었어요 🫠)

저는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을 가장 사랑하고 마이크로매니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죠. 반면 컨설팅 회사는 일종의 군대 처럼 꽉 짜인 시스템 안에서 숨 막히게 일하는게 기본이고요. 사실 그런 시스템이라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저는 (제 욕망과 반대 되는) 그런 선택을 했었을까요?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저는

"애 낳고 일년 반 기저귀 갈다가 딜로이트에 들어갔대, 아직 안 녹슬었네!"라는 말을 남들에게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탑 티어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타인의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해서 안 맞는 옷에 나를 구겨 넣어본 것이 아닐까.

결국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해낸 나를 누군가 알아봐주는 순간을 원했던 건 아니었을까.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럼 부러움은 무조건 나쁜 감정일까요?

후배님이 고민을 털어놓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죠.

“이런 마음을 갖는 게 좀 부끄러워요. 그냥 부러운 거잖아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부러운 게 왜 부끄러워요?”

많은 사람이 부러움을 들키면 안 되는 감정처럼 다뤄요. 성숙하지 못한 마음, 옹졸한 마음이라고요. 그래서 부러움이 느껴지는 순간 그 마음부터 서둘러 덮어버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덮어버리면, 그 밑에 뭐가 있었는지 사실 영영 알 수 없게 되죠.

부러움은 꽤 정직한 신호예요.

우리는 아무 데서나 부러움을 느끼지 않아요. 정확히, 자신이 이미 마음 쓰고 있는 것에서만 부러움을 느끼더라고요. 관심 없는 분야의 성취는 아무리 대단해도 부럽지 않죠.

예를 들어 제 지인이 운동이나 그림으로 큰 성취를 이뤘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멋있다”고 말할 거예요.

그런데 그 지인이 제가 오래 닮고 싶어했던 영역, 이를테면 소설이나 시 같은 창작적 글쓰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면요? 아마 그때는 “멋있다” 뒤에 아주 작은 마음 하나가 따라올 것 같아요.

‘으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부러움이 콕 집어 발동했다는 건, 그 안에 내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부러움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내 욕망의 입구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앞에서 던진 질문, “나는 누구의 욕망을 위해 살고 있는가”로 돌아가 보면, 그 답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입구가 사실 부러움입니다.

부러움이 켜지는 지점이 곧 어떤 욕망이 작동하는 지점이니까요. 그게 내 욕망인지, 학습된 타인의 욕망인지는 그 부러움을 열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요 포인트를 후배님과 나누고 싶었어요!)

문제는 부러움 자체가 아니라, 그 신호를 열어보지 않고 통째로 삼키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부러움이 느껴지면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뭉뚱그려진 마음으로 넘어가죠. 그런데 그 안에는 여러 가닥이 섞여 있습니다.

어떤 가닥은 온전히 타인의 것이고 (그 사람의 회사, 그 사람의 타이틀, 남들이 알아봐주는 그 순간) 어떤 가닥은 사실 내 것이에요.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원했지만 미뤄뒀던 방향이, 그 사람을 통해 잠깐 비친 것뿐이죠.

이 두 가닥을 분리해낼 수 있다면, 부러움은 부끄러워할 감정이 아니라 나침반이 될 수 있어요. "저 사람이 부럽다"에서 멈추지 말고, "정확히 뭐가 부러운가"까지 파고드는 것.

그 사람의 회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자율성이 부러운 건지, 그 사람의 타이틀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부러운 건지. 그 구체적인 가닥을 찾아내는 순간, 부러움은 더 이상 남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나를 향한 질문이 된답니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가 부러우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대신 물어보세요. "나는 정확히, 뭐가 부러운 거지?" 🧐

이번 주, 스스로에게 건네볼 질문

지금 마음에 걸려 있는 선택이 하나쯤 있으실 거예요. 이직일 수도, 새로운 도전일 수도, 아니면 그냥 요즘 자꾸 눈이 가는 누군가일 수도 있고요. 그걸 떠올리면서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세요.

하나. 지금 내가 원하는 이것, 이 욕망은 언제, 누구에게서 배운 걸까?

둘. 최근 누군가 부러웠다면, 정확히 그 사람의 '무엇'이 부러웠을까?

셋. 아무도 모르게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SNS에도 올리지 않는다면 그래도 이걸 고를까?

좋은 커리어의 기준은 사실 밖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도 남아있는 마음, 그게 기준이에요. 저도 오늘, 제가 누구의 욕망을 위해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남의 채점표가 아니라 나의 채점표로 인생을 살 수 있도록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요즘 부러운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정확히 무엇이 부러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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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텐셜리,

쟈스민 드림.